사람을 움직이게 하려면 감정을 긁어야 하나봐요.
2010.04.14 16:34
요즘 에스토니아에서 적응하기 힘들어 하고 있는 minki입니다.
이번주는 우리 보스가 한달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말 안 듣는 원생 2명의 학회 초록을 안내해서 등록시키는 일을 맡았거든요. 처음에 초록쓸 수 있겠냐니까 둘이 쓸수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럼 나한테 보여줄수 있냐니까?
싫대요. -_-;
서로 말도 안 하는 사무실 동료다 보니까, 적개심이 많은 것은 당연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아무리 제가 저쪽 동쪽 끝 북한의 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나름 저도 검증된 연구자에 속하는데요. 그냥 보여주기 싫다네요. 그래서 보스한테 받은 메일을 들이밀면서 나한테 이 일감이 떨어졌으니, 너희 둘은 나를 통과해야 한다 라고 강경하게 나갔죠. 그러니 벌레 씹은 표정을 짓더니 알았답니다.
그 후, 한명은 메일을 보내서 검토를 받았는데요. 말이 잘 안통하는 건지, 제가 잘 한다 그런데 이것 좀 바꿔라 라고 하면 딱 그것만 문장 순서를 바꾸고 다시 메일을 보냅니다. 어제만 저한테 4번이나 검토를 받으면서 추가로 쓴 단어는 거의 없네요. 또 다른 한명은 오늘 와서 저랑 이야기 했는데요. 이게 더 큰 연구 계획속에 포함된 거니까, minki 니가 잘 모르는 거다. 지금 초록에는 이렇게 써져 있지만 정말로 발표할 때는 다 보여줄 수 있다. 초록에 모든 내용을 다 담지 못하는 것은 단어수 제약때문에 minki는 그런 것도 모르냐. 이렇게 저한테 막 따지더라고요. 생각같아서는 60년대 아버지님들이 아침밥 먹다가 밥상 엎는 듯한 액션을 취하고 싶었으나, 얼굴이 빨간해 지면서 꾹꾹 참고 다시 천천히 알려줬습니다. 나 하나도 이해 못시키는데 학회가서 나같은 사람들 더 많이 만나면 힘들테니 더 친절하게 설명글을 쓰는게 어떠냐 라고 했죠.
그래도 그렇게 감정을 박박 긁으면서 말을 하니까 조금 움직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거기 가서 독일이나 핀란드 학자들한테 쪽팔림 당하는 것 보다 지금 알아서 더 완벽하게 준비하는게 중요할텐데.. 그런걸 잘 모르나봐요. 독일 사람들은 특히 무서워서 지금 저 2명이 준비하는 수준의 발표는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고요. 아예 대 놓고 질이 떨어진다고 에스토니아 나라 전체를 욕할게 뻔 합니다. 유럽에서는 국가별로 사람들이 티격거리는게 심하죠.
마감인 내일까지 어떻게 하는지 봐야겠지만요. 저를 무슨 원수 처럼 보는 젊은 여성분 2명이랑 일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건지 몰랐습니다. 6월달에 이 학회를 가는데요. 이 비협조팀 2명이랑 또다른 아줌마 한 명이랑 4이서만 헬싱키로 학회를 가야 합니다. ㅠ_ㅠ
코멘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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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곰
04.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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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여성분들은 일찍 결혼/동거를 하기에 싱글은 하나도 없습니다. -_-;
정신적인 스트레스 받는 거 합치면 절대로 부러운 일이 아닙니다. 제 옆에 있는 이 두 사람만 생각하면 오전부터 술이 땡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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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축제
04.14 16:54
아빠곰님은 재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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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4.14 17:11
원래 잿밥에만 관심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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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냐음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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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04.14 19:41
답답하시겠네요.
힘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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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4.14 20:18
ㅎㅎ
나쁜 놈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 결론적으로 착한 놈이 되는 겁니다. 상대방이 알아주든, 아니든.
그래도 밍키님이 좋은 놈이란건, 자기는 나쁜 놈되기 싫어하는 이기적인 놈들이 아닌, 정말 악한 역할도 할 줄아는 좋은 놈들(이런 분들이 대부분 우수합니다)이 알아 주실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구요. 곧게 힘차게 사세요. 토닥~토닥
그나저나...잿밥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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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위치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 지 잘 모르겠으나 원생이라 함은 대학원생일꺼고 밍키님은 지도교수는 아녀도 강사쯤 되시나요?
그럼 보스가 시키신대로 진행하시고 잘 않 따라오면 뭐 마는 것지요.
학위를 못 받으면 지들이 못 받는 거고 학회에 나가서 쪽팔리면 뭐 지들 손해 아니겠어요. 학교체면도 있겠지만.....
서양얘들 일리리 간섭하는 거 되게 싫어하는 것 같더군요.
전 그렇습니다.
명확하게 설명할 것 설명하고 지들이 하든지 말든지 상관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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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트
04.14 20:33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아마 밍키님 업적으로도 잡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저러나 -_- 다 자기 잘되라고 하는 소린데 멋도 모르면 시키는데로 따라와주기만 하면 될텐데 무슨 똥배짱일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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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제가 주로 해야할 업무는 아닙니다만, 여기 보스한테 도움 받은 것도 있고, 이 연구실에 공헌해야 할것도 있고 그러니 학생들 글이나 한번씩 더 봐주면 저야 좋을 것 같은데요. 여기 분위기상 서로 눈귀입, 코까지(응?) 막고 사는 곳이라서 정말 답답합니다.
그래도 제 업적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기에 좋은 소리는 못들으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잔소리를 사서 하게 되네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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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잘래나
04.15 00:56
니네가 니 주제에 관해서는 전문가니깐 니네가 쓴 말이 다 맞다고 일단 치켜주시고...but 그 주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봐도 이해할 정도로 쓰는게 정말로 전문가가 아니겠는가하고 조언해보시는 것도 어떨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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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키님 방가~
에스토니아라....
에스토니아 여성분.. 그것도 두분과 오붓이 사무실을 쓰시는군요.
부럽습니다,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