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스토리
2012.07.01 10:24
안녕하세요. 시간강사 언이아빠입니다. 오늘은 채점이야기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제가 이번 학기에 가르친 과목은 제 세부전공과는 조금 다른 분야라서, 강의하는 제게도 그리 쉽지 않았지만,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웠나 봅니다. 퀴즈와 두번의 시험 때마다 학생들이 밤을 샜다고 하는 걸 보면요. (갑자기 유진반쪽 님이 생각나네요. 요즘 쓰시는 글을 보면 왜 "얼굴이 반쪽"이라는 표현이 떠오르는지...)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거둔 걸 보면 장합니다. 제 정책이 공부는 많이 시키되, 시킨 걸 다하면 (다하면!) 후한 점수를 주는 거라서요. 그래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허리가 잘록합니다. (콜라병 몸매 ㅋㅋ)
그런데 F를 받은 학생들이 보내는 이메일 때문에 골치가 아프네요. 한 학생은 퀴즈와 중간고사 점수가 상당히 낮아서 F가 예상되었기에, 삼배수로 미리 제공되는 기말고사 문제를 당일 이배수까지 풀어 제출하면 중간고사 성적은 남는 일배수로 재채점하겠다는 구제책을 줬는데요. 결시했네요. 당연히 F를 줬는데, 시험 며칠 전에 조모상을 당했었다고 레포트를 쓰겠답니다. 사정이야 딱하지만, 며칠씩 아무런 연락도 없다가 결시했고, 그 동안에도 잦은 지각과 낮은 성적으로 인상이 안 좋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졸업못하면 취업못한다고 읍소를 합니다. 이번 학기 졸업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전화도 이메일도 안하고 무단결시를 했는지...
위에 거론한 친구는 차라리 나은 편이고, 또 한 학생은 강의도 형편없었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F를 주느냐는 내용으로 이메일을 보냈네요. 이런 학생들의 공통점이 철자와 문법이 틀린다는 점인데, 이 학생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는 사업하다가 늦게 공부한다고 들어왔는데 왜 차별하냐는 식이네요. 두 문제 중에 하나 밖에 안 풀었으면서 차별은 개뿔... 사실 대학에서 연세든 학생들은 두 유형이 있는데, 한 부류는 정말 공부에 원이 져서 들어오시는 분들이고, 또 한 부류는 돈 좀 벌었다고 학벌세탁하러 오는 이들이죠. 자기 사장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꼴이 딱 두번째 부류...
제가 수양이 덜 되었는지 두번째 학생에게는 몇 자 적어서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날아오는 것이 자기가 인생 살아보니 학벌이 중요하더라, 분투하기 바란다고 썼네요. 아마도 sky에서 살짝 모자라는 제 학부학벌을 보고 비꼬는 건가 봅니다.
이래저래 씁쓸하네요.
코멘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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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런 학생들이 있다는 게 놀랍네요. 학교에서 그런 행동 사회에 나가서도 고쳐지지 않겠죠.
작은 부조리가 이 사회를 병 들게 하고 있습니다. 원칙데로 처리하시길 바래요.
졸업 못 할 정도면 공부를 했어야지.. 그 학생은 나중에 교수한테 사정하면 되겠지라고 안일한
생각 했나 보군요.
요즘 취업 준비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주위에 보면 학교는 졸업 했는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아직 정하지도 못한 20대 청춘들은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건 감나무 밑에 누워서 입 벌리고
가만히 감이나 떨어지길 기다리는... 자신이 노력해서 취업 준비를 하는게 아니라 누군가 취업 시켜
주길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한심하다는 생각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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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란
07.01 13:10
원칙대로 처리하세요. 저렇게 거져먹으려는 사람들에게는 거져먹지 못하게 하는 게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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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ism
07.01 18:55
속상하시겠네요. 힘내세요 :-) 언이아빠님 잘못은 아니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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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7.01 21:38
ㅋㅋ
1) 별 거지 같은 놈들 다 보겠네요. 날릴 학생은 잘 날리셨습니다. 거지들~
2) 왠만하면 응대하지 마세요. 꼬인 놈들은 응대한 것가지고 또 꼬아서 괴롭힙니다.
3) 학벌은 중요할 때가 옵니다. 어떻게든 쌓으셔야 합니다.
4) 힘내세요. .... 토닥 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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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친구들 너무 많네요. 신경쓰지 마시고 좋은 강의 많이 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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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는 학교(미국 인디애나)도 저런 학생이 수두룩 합니다........ 조교로 일하는데, 제 주 업무가 과제 제출일 전에 안내 메일 보내고 안 낸 학생들에게 구제책 보내주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ㅡ.ㅡ
입이 거칠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만... 좀 참아보겠습니다. ㅎㅎ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수강신청기간 중 공개되는 강의 커리큘럼에서 e-mail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것은 모두 공개된(홈페이지?)에 올려둔다고 하는 겁니다. 이메일이나 학번을 적당히 가리면.. 강의를 함께 듣거나 학교를 같이 다닌 사람은 유심히(!) 보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학점을 주실 때.. 열심히 한 사람에게는 그 달성정도를 떠나 어찌되었던 학점을 주는 시스템을 택하셨다면.. 사실 항의한다고 들어주고 이런 건.. 좀 그렇죠. 그리고 F떠서 졸업 못 하고 이런 것도 위의 형식으로 남겨서 오픈하면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메일 샘플은 몇 개 완전 무기명으로 올려두시면 되겠네요.
소위 열린 행정이라.. 비용이 많이 들고 힘들긴 하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