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탈퇴에 관해 한 마디.

2010.03.29 07:45

tubebell 조회:911 추천:27

안녕하세요, tubebell입니다...

 

전 디스크 파열 환자입니다.

아니죠, 파열 환자였습니다.

디스크는 완치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아직도 환자기인 합니다만

(가끔 자연재생이 된다고는 하지만.... 이미 30대라... 기대하는 건 욕심일 수도 있죠..)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튼튼해 보이고, 실제로 튼튼한 삶을 삽니다.

 

 

저는 자리에서 아예 못 움직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군대도 제대한 후였고

대학 졸업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미래를 준비할 시절에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첫 날 시작된 통증은 갈수록 심해져서

하루에서 최소한의 시간(먹고 싸는)을 제외하고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의 1년을 그렇게 살았으니

저로서는 거의 좌절감밖에 느낄 게 없었습니다.

자살도 태어나 처음으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전 천주교 신자여서 자살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5분이면 가는 집을 거의 30분 넘게 땀 흘리며

정말로 '기어갔을 때'가 기억 납니다.

사람들은 저를 '초저녁부터 취한 젊은이'로 봤겠죠.

땀이 많이 흐르는 덕분에 함께 울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그 때 얻었던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 인생에선 자신의 건강이 최우선이다.

 

 

당연한 얘기죠.

내가 아프면 끝입니다.

몸이 아프면 특히 더 그렇습니다.

마음이 아파도 끝장이 날 것 같지만, 마음의 치유력은 정말이지 강력합니다.

몸에 비하면 말이죠...

몸은 의지로도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끝까지 가다 보면 정말 몸으로 인해 마음이 걸레가 됩니다.

 

 

다음 진리를 그 덕분에 배웠습니다.

 

 

- 단순한 진리를 얻기 위해선 많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버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허리의 통증으로 웬만한 스포츠를 즐길 수 없게 되었지만

그걸 관람하거나 유명 선수들의 행동으로 대리만족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웠습니다.

사진에 욕심이 많아, 여러 렌즈와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버릇을 버리고

가볍고 작은 카메라에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람들과 만나지 않아도,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내게 어떤 존재임을 깨닫고

정말 내가 감사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삶의 많은 부분이 축소되었지만

저는 덕분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커다란 흐름을 읽는 식견과, 그 흐름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도인 같은 마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 정상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오직 '버림'으로써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탈퇴하신 분들.

탈퇴하고 싶으신 분들.

충분히 이해합니다.

 

마음이 아프면 정말 뒤도 돌아보기 싫으실 겁니다.

그래서 글마다 '소중한 저의 KPUG'라고 하시면서

다들 탈퇴를 하시곤 한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귀한 경험을 한 제가 감히 조언을 하자면

잠시만 여러가지 마음들을 '버려 주십시오.'

 

분노의 마음도 잠시 버리고 생각해 보면 어떤 방법이 가장 현명한지 스스로 알게 됩니다.

서운함의 마음도 버리게 되면 좀 더 큰 가치에 대해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혼란스러움을 버리고 잠시 버티면, 그 후에 찾아오는 평안함에 나의 몫도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과거 온라인 상에서의 커뮤니티는 페르조나라는 인격 가면을 쓰고

현실 세계에서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마음껏 분출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사용되곤 했지요.

 

KPUG이 단점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멋지다고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곳은 그런 가면보다는, 자신의 실제 인격으로 진솔하게 대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다른 가면을 쓸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판단하셨겠지요.

 

그 말은, 반대로는 'KPUG 회원 모두가 사랑하는 곳'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할 것입니다.

 

 

 

 

큰 가치는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풍파와 혼란은 삶을 단단하게 해 주는 역할도 미약하게나마 담고 있습니다.

이 악 물고 버티면 얻는 것이 생깁니다.

 

 

KPUG에 소중하고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미 버리셨다면, 다시 찾아 주십시오.

 

 

 

대다수의 회원과 일면식도 없고

늘 철 없는 글만 적는 일개 회원이

속마음을 얘기해 보았습니다.

 

읽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 [공지] 2025년 KPUG 호스팅 연장 완료 [9] KPUG 2025.08.06 11398
공지 [공지] 중간 업데이트/ 다시한번 참여에 감사 드립니다 [10] KPUG 2025.06.19 21169
공지 [안내의 글] 새로운 운영진 출범 안내드립니다. [15] 맑은하늘 2018.03.30 45041
공지 KPUG에 처음 오신 분들께 고(告)합니다 [100] iris 2011.12.14 470385
29809 이번 추석은 버라이어티 했습니다 [8] file 바보준용군 10.11 153
29808 벌써 추석이네요 [5] file 해색주 10.07 102
29807 강아지 추석빔...2 [9] file 아람이아빠 10.02 127
29806 나랏말싸미 듕국에.... [6] 인간 09.28 179
29805 강아지 추석빔.. [12] file 아람이아빠 09.21 225
29804 집을 질러야 할 것 같습니다. [5] 해색주 09.18 273
29803 테레비를 샀습니다 [17] file 바보준용군 09.11 488
29802 체력이 마이너스이구만요. [8] 해색주 09.08 305
29801 영포티는 모르겠고 [9] file 바보준용군 09.06 376
29800 영포티라고 아시나요? [11] 해색주 08.31 437
29799 그 동안 만든 것들 [8] file 아람이아빠 08.31 283
29798 kpop demon hunters [11] 왕초보 08.28 541
29797 가족의 중요성 [13] 인간 08.19 485
29796 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20] 해색주 08.18 403
29795 오아시스 욱일기 논란 [5] 왕초보 08.15 405
29794 몇년만에 자게에 글을 쓰는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11] Electra 08.14 374
29793 자세한건 만나서 이야기 하자. [12] 산신령 08.13 408
29792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19] highart 08.09 371
29791 무지개 다리를 건너다. [6] 인간 08.03 502

오늘:
5,301
어제:
20,591
전체:
17,632,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