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2010.04.16 11:46
저도 어느 분을 따라 제목이 점 점 낚시성이 됩니다.
오늘 아침 일화입니다.
오전 6시 20분 집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이 시간에 전화할 분은 어머니 뿐입니다.
역시나 어머니였습니다
" 너희집 불 안났지?'
"네?"
"(좀 더 흥분된 음성으로) 빨리 밖에 나가봐라, 너희 앞동에 불 난것 같다."
"네? 네." 창문으로 이리 저리 둘러보았으나 여느 아침과 같이 조용, 고요했습니다. 그래도 주섬 주섬 옷을 줏어입고 있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립니다.
"빨리 안 나가보고 뭐해, 아까 그집 윗 집으로 번진 것 같아."
"여기는 조용해요."
"아니야, 빨리 알아봐라 어서 신고해야지"
"네"
참고로 저희 부모님 사시는 집에서 문을 열고 쳐다보면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한 눈에 보입니다
거리는 약 1km, 고도차이 때문에 저희 집에서는 안 보이지만, 어머니 집에서는 잘 보입니다.
밖으로 나갔습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유난히 밝았습니다.
밝은 것이 노랗지 않고 붉었습니다. 마치 석양으로 지는 태양 같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저 모습을 보신 건가?
"어머니, 앞동으로 왔는데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니야, 아버지도 나와서 보고 계셔"
"어떤데요?"
"한 집에서 창문이 벌겧게 되더니 그게 윗집으로 번지고 지금도 그래."
"그래요? 참 이상하네요. 여기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혹시 저쪽 동부시장쪽 아니에요? 거기가 여기서 봐서 벌건데 그건 태양이 뜨느라 그러네요."
"아니야, 너희 사는 아파트가 맞아. 그런데 연기는 아직 안난다."
제가 첫 전화를 받고 밖에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약 5~6분 정도소요되었으니 정말 불이 났다면 연기가 나와야 맞는데 말이요.
이리 저리 돌아다니던 제게 아파트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저희집을 바라보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제가 사는 집 아파트 창문에 비치며 마치 아파트에 불이 난듯 벌겋게 보이네요.
저라도 착각할 정도로 말이요.
다시 전화를 드려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러냐? 다행이다. 너희 사는 곳이라 걱정이 되서 말이지. 그렇구나. 알았다."
저희 부모님 인생에 두번의 화재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아주 어릴 적이라 저는 기억이 안 나구요.
또 한 번은 1986년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라, 그리고 그 현장에 저도 있었던 터라 많이 민감합니다.
아침부터 당황스런 전화가 해프닝으로 끝나 참으로 다행입니다.
우습기도 했고, 부모님의 사랑도 받은 기분 좋은 아침이었습니다.
코멘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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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버지께서도 둘째 형을 방화로 잃으셨습니다... 불에 대해서는 조금 민감한 편이네요.
저는 사건정황만 알고 있고 유치원도 가기 전 일이라 잘 모릅니다만... 경험이 있다면.. 쉬운 문제는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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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4.16 12:15
자주 전화하세요.. 가까이 사셔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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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04.16 13:09
매주 한 번 저녁을 같이 먹습니다.
어머니의 낙 중 하나가 손주들 좋아하는 음식 해주시는 거에요.
토요일 아침이면 저희집에 전화해서는 손주 바꾸라고 하시고, 뭐 먹고싶나고 물으셔요.
건강하게 곁에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불나면 뉴스에서 얼마의 재산피해 이렇게 나오는 것보다,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사진이 없어지는 게 슬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