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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교육이 유행이라죠?

2016.07.23 19:48

해색주 조회:690 추천:1

 세상의 유행은 참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 컴퓨터 교육 열풍이 불었죠. 저는 그 와중에서 학교에 있는 8비트 컴퓨터에 GW-BASIC을 코딩하는 것을 하고 그래프를 그리는 것을 하고는 했습니다. 제가 코볼과 같은 상용 언어를 배우려고 할 때가 되자, 유행이 끝나더군요.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고 더 이상은 즐거운 코딩을 할 수는 없게 되더군요.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러서 대학교에 들어갔고 윈95가 나왔습니다.(저는 96학번입니다.) 워낙에 불안정한 OS라서 ㅁ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했고 저는 컴맹에 가까워서 제대로 써보지 못했습니다.


 매트릭스를 보고 컴공 전공자인 여친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코딩이나 컴퓨터/서버에 대해서 알게 되고 나중에는 진지하게 대학원 진학도 생각하게 되었죠. 문제는 관련 분야에 취직하는 것을 실패하고 나서, 엉뚱하게도 은행에서 통계팩키지와 SQL과 오라클 그리고 유닉스 명령어를 배우게 되더군요. 당시 유행하던 CRM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워낙에 기반이 없어서 담당자들이 모든 데이터를 직접 만들어서 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프로젝트 한 번 하고 합병 되고 그러면서 정말 피를 토할만큼 코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처럼 기본적인 지식이 안되는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던 해당 분야의 지식을 찾게 되더군요. 나중에는 이것저것 귀동냥, 눈동냥 하면서 살았습니다. 전산부 담당자와 말씀하다가, 프로그래머에게 코더라고 하는 게 얼마나 실례인지 알게 되었죠. 이것 때문에 같이 일하던 직원이 불같이 화를 냈는데,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조금씩 알게 되었거든요.


 오늘 아이들 교육에 대한 설명회를 다녀왔습니다. 첫 번째 강사는 새누리당의 황태자였던, 이준석님이었고 두 번째는 컴퓨터교육학과 굥수님었고 세번째는 공부혁명대 대장 송재열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이준석님이야 예상했던 범위 안에 들어왔고, 송재열이라는 분은 공부하는 기.술. 그 자체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송재열님의 강연이 가장 인상에 깊었습니다. 다만, 저렇게 공부하는 것은 성적은 올리겠지만 내 아이가 가야 할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아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공부 기술 그자체는 극강이었습니다.


 뭐랄까요, 내공은 별로 없지만 외공으로 일가를 이룬 무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공부하는 기술을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어느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스승으로서는 글쎄요. 여하튼 그분의 삶이나 이야기는 충분히 존중할만했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컴퓨터 교육학과 교수라는 분이 코딩 그 자체에 대해서 지나치게 대놓고 비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의 생각에는 코더는 하찮은 것이고 아키텍트가 되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를 들면서 한 것이 조각가가 디자인을 해서 석공에게 외주를 주고 그것을 전시하는 것은 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코더(프로그래머)를 그 석공에 비유하더군요.


 그 순간 제가 갑자기 열이 확 뻗쳤습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도 비슷한 사람이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이나 데이터 핸들링 하나도 안하고 입으로 일하고 정리해서 자기가 했다고 위에다 보고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죠. 예전에 회사에서 제 일을 그렇게 가로채려는 사람이 있어서 대판 싸우고, '난 당신 도움 없어도 잘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 찾아보세요.'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통계 전공자중에 코딩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죠. '난 코딩 잘 못해도 되요. 분석하면 되잖아요.'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형태로 데이터를 정리하지 않으면 분석이고 통계분석이고 못합니다. 기본적인 데이터조차 못만들면서 분석을 하겠다는 것은 화학자가 실험하지 않고 남들 데이터 다 정리한 것 가져다가 새로운 성분을 만들겠다는 것과 같죠.


 여하튼 그 교수님에게 많이 실망했습니다. 현업 경험이나 실무 경험이 없어서 저러시지는 않을테고, 프로그래밍 자체에 대해서 천시하고 아키텍트 같은 것에 대해서 '우와아아, 킹왕짱'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즘 들어서 이쪽 통계/IT분야 교수님들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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