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지진이 오고 나니, 이곳 저곳에서 이상하게 날뛰는 사람이 많네요.  다행히 KPUG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어제 저녁 부터 오늘 아침까지 관심을 받고 싶어서든, 왜곡된 역사인식을 드러내든, 이런 일에 조차 특정 정파 혹은 지역을 기준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거기에 낚인 듯 날뛰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 3년 전 왜 제가 인터넷을 통한 의견의 교환과 감정의 교류를 포기하고 오프라인에서의 일상에 주력했는지 한번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내일 부터 추석연휴의 시작인데, 오늘은 회사에 나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게 영 마뜩찮아서 쓰는 글은 아닙니다 ^^



  약 3년 전쯤에 정말 오프에서의 삶에 집중해 보자고 생각을 한 계기가 되었던 건 한가지의 두려움과 한가지의 사건, 그리고 한가지의 위기감 때문이었습니다.


  한가지의 두려움이라는 건, 온라인에서 문자를 통해 전달되는 의견 혹은 감정의 폭력성이었습니다.  물론, 당연히도 저 스스로도 포함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 KPUG글만 봐도 낮 뜨거운 게시물 많습니다. 탈퇴할 때 안지워서 지금은 지울 수도 없죠.)   처음에는 나름대로 오프라인에서와 비슷한 태도와 말투로 글을 쓰고 댓글을 달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좀 더 시니컬하게, 좀 더 공격적으로, 제재를 당할 수준의 욕설만 피해서 비꼬고 돌려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기 위해 작성하는 듯한 글들을 스스로 쓰면서 놀랐고, 저를 향한 그런 글들 보면서 두려웠습니다.  물론 그런 언어적 공격을 하고 싶을 만큼 지독히도 편향되고 비뚤어진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스스로의 정신이 서서히 황폐해져 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들 만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오고가는 말들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던 그때 쯤,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심장이 울렁울렁하기도 하고 약간의 현기증도 느껴지는 듯한 생각이 드는 순간 알게 됐습니다. 


  그 두려움의 정체는 저 무지막지한 문자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내 바로 옆에 앉은 지극히도 예의바르고 정상적인 그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부터 오프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집중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저 사람은 어떤 본심을 가진 사람일까? 저 사람은 어떤 커뮤니티에서 시니컬한 독설을 내뱉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머릿속을 맴돌게 되니 좀 힘이 들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저런 이상한 글들, 폭력적인 문장들, 독선이나 아집이 흘러내리는 글들과 그에 대한 날 선 비난과 독설들에서 벗어나 얼굴 맞대고 할 수 있는 언어의 세계에서만 살아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죠.   


  사실, 상당수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과 댓글을 보면 현대인의 황폐화된 정신세계의 민낮인지, 현실에서 풀지 못하는 공격성을 익명을 이용해 화끈하게 풀고나서, 도리어 정상적인 오프라인에서의 삶을 좀 더 절제하게  해 줄 수 있는 순기능을 내포하고 있는 필요악인지 판단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어쨋든 그런식으로 라도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공격성은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다음에는 더 쉽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




  한가지의 사건은 집 앞 놀이터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그 사건에서 본 장면을 인터넷에서 보면서 놀랐던 사건입니다. 

  어느 젊은 부부가 3~4살 되어 보이는 어린 딸아이와 놀이터에서 스프링 달린 놀이배에 태워서 놀아 주고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정겨운 일상의 모습이었죠.  아이 아빠는 얼핏 봐도 상당히 고가로 보이는 큼직한 카메라로 아이와 아이엄마 사진을 연신 찍어주고 있는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 엄마가 이제 시간도 늦었고, 식사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집에가자고 합니다.  그랬더니 아이 아빠는 조금만 더 찍자, 포즈를 이렇게, 표정을 이렇게, 아이와 가까이를 연신 요구하며 사진만 찍고 있었죠.  아이 엄마가 이제 그만 저녁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순간, 아이 아빠의 말이 준 충격.  “야, 이 Cxㄴ아, 니나 가서 쳐먹으라고.” 헉. 놀이터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동작이 일지 정지 되고, 그 아이 엄마 머리위로 떨어지는 눈이 휘둥그레진 현란한 욕설.  놀랍더군요.  아이 엄마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혼자 총총히 사라지고 남은 아이의 사진을 연신 찍어대는 아이 아빠.  아이가 얌전히 있을리 없겠죠.  아빠는 욕하면서 소리지르고 엄마는 시야에 보이지 않으니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울고 있는 모습 사진을 몇 장 더 찍더니, 아이의 머리 위에도 지옥에서 불려 올라온 듯한 욕설이 쏟아집니다.  신고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리고 아이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정말 놀랐던 건 그 며칠 후, 그 장면이 사진으로 포장되어 모 사진사이트에 올라 온 걸 본 이후였습니다. 그 분이 올린 모든 사진은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었고, 아이는 천진난만하고 귀엽고 때묻지 않은 모습으로 즐거워하고 있었고, 아이 엄마는 세상에 다시 없을 만한 행복한 얼굴을 하고 화면에서 웃고 있었고, 글을 올린 당사자는 세상에 다시 없을 자상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맘씨좋은 이웃아저씨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링크된 블로그로 가보니, 세상에 저렇게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며, 따듯하고 자상한 가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한 사진과 글들, 그리고 그 사진 속에서 한 없이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는 얼굴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온라인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었고, 실질적으로도 온라인 활동은 거의 없는 상태이긴 했지만, 한동안 완전히 오프라인에서의 일상에 집중하게 해 주었던 한가지의 위기는 심장에 생긴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의 거리가 대략 25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라, 한동안 운동삼아 지하철 출퇴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느 날과 같이 아침에 걸어서 지하철 역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심장이 덜커덕 거리는 느낌이 나더니, 눈앞이 새카맣게 변하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가슴에 손을 대보니 아마 심장이 분당 2~300회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덜그럭 거리면서 뛰고는 있지만 너무 약하게 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장박동이라기 보다는 심장 경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숨도 차오르고, 이렇게 쓰러지면 그냥 죽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지 주머니에 분명히 휴대폰이 있었지만, 그 휴대폰으로 119에 전화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설사 생각이 들었다고 해도 보이지가 않아서 전화를 걸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보니 다시 눈은 보이기 시작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경련 수준으로 뛰고 있었고 숨도 차고 걷기도 어려웠지만,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결국은 거의 기다 시피 해서 큰 길 쪽으로 나갔고, 횡단보도에서 깃발들고 공공근로 하시는 분께 도움을 요청하고 바닥에 누웠고, 그렇게 119를 타고 응급실로 갔습니다.


  그렇게 치료를 받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 또한 두번째 말씀드린 경우의 저 아이 아빠와 뭐 그리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윽박지르거나, 제 마음대로 하거나, 저를 포장하지는 않았지만, 어쨋든 일이나 친구들, 혹은 온라인 활동들이 가족생활에 필요한 시간을 뺏은 것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 온 건강상의 위기는 시간을 그런식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가입되어 있던 모든 커뮤니티에서 탈퇴를 했고, 그렇게 오프에서의 삶에 치열하게 집중했습니다.  KPUG에 다시 가입하고 글을 쓰게 될 때까지, 단 한줄도 온라인에 올리지 않았을 만큼 집중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는 지리적으로 만날 수가 없는 다양한 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계신 분들과 조금은 폭넓은 대화 혹은 우스갯 소리를 하면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기도 했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조금은 절제되고 평이한, 평범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성은 있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믿고 KPUG에 다시 가입을 하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만약, 제 스스로가 제어되지 않고 예전과 같은 어법을 쓰게 된다면, 또다시 인터넷 묵언수행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 잡아야겠죠.


  

  어쨋든  연휴를 앞둔 마지막 근무일의 근무시간의 일부는 또 이렇게 때웠습니다.^^



다 쓰고 보니 좀 기네요.   긴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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