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영유권을(한국 소유라는걸) 주장하는 일본인 을 보앗습니다
2011.08.05 14:11
오늘 어떤 일본 분을 쳇으로 만낫습니다 (쩨가 한국인것을 몰르고 계시며 친척(일본 거주중)을 통해 대화 하엿습니다)
독도 에대한 생각이 좀 남달른분이 셧죠 ,,,일본 분이면서 (유학다녀오신분이랍니다) 독도 영유권은 자국의 소유가 아닌 한국 소유의 것이라는걸 아시는 분이셧습니다 ㅠㅠ;;;;;;; 눈물나는군요 ㅎㅎ;;;;;;;;;;;;; 사실 일본에 사시면서 일본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는분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죠
독일 처럼 과거의 일을 사과 하면 좋을 텐대 말이죠......
--------------------------------------------------------------------------------번외로 월남 파병때 재미잇는? 이야기중 하나 입니다 김치 통조림~~------------------사실 슬픈 이야기 일수도 잇습니다만은........---------------------------------------------------------------------------------------------------------
장병(將兵)들의 소원은 한 가지였다. 그것만 먹을 수 있다면 징그러운 밀림도, 적(敵)의 야습이 주는 공포도, 이역(異域)에서의 외로움도 금세 떨쳐낼 것 같았다. 바로 김치였다. 45년 전 월남 땅에서 일어난, 지금은 잊혀진 사연이다.
그곳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이 이 소식에 가슴을 쳤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한식품'을 만들었다. 마침내 김치통조림이 생산됐다. 양국진 사장이 그걸 들고 월남으로 달려갔다. 모두가 입맛을 다시는 가운데 뚜껑이 열리자 모두가 경악하고 말았다.
배추와 무는 흔적도 없고 '핏물'만 흥건했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제대로 된 통조림을 만들 기술이 있을 리 없었다. 대충 흉내낸 깡통이 녹물을 토해내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엉터리김치로 둔갑하고 만 것이다.
병사들이 투덜댔다. 그들 앞에 장군이 나섰다. "이 김치는 조국이 우릴 위해 만든 겁니다. 맛있는 김치를 먹을 방법이 있긴 있어요. 일본기술을 사 오면 됩니다. 대신 여러분이 목숨 걸고 번 달러가 부모 형제 대신 일본으로 갈 겁니다…."
그 말에 병사들이 울었고, 장군도 따라 울었다. 잠시 후 장병들이 하나 둘 눈 질끈 감고 '핏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없던 기술이 하루아침에 생길 리 없었다. 마침내 대통령까지 '김치전선(戰線)'에 투입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존슨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각하! 월남에 있는 한국군에게 한국 음식을 공급할 수 있다면 사기와 전투력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할 겁니다. 한국인이 매일 빼놓을 수 없는 김치를 꼭…."(1967년 3월 8일)
미국 정부 수뇌부가 모였다. "김치가 대체 무슨 음식이냐"는 희한한 토론이 워싱턴에서 열렸다. 며칠 뒤 대통령 편지를 들고 간 정일권 국무총리를 통해 반가운 소식이 왔다. "미국이 우리 주장에 적극 동의해 김치 문제가 해결될 듯합니다!"
1960년대 한국은 텅스텐 같은 몇 가지 광물을 제외하면 팔아먹을 게 없었다. 그 외화 갈증을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서독에 간 광부(鑛夫)·간호사 2만명과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월남파병 군인 32만명이 보내온 달러로 풀었다. 광부들은 청춘을 막장에 묻고 석탄을 캤다. 간호사들은 시체를 만지고 변비 걸린 환자의 항문을 손으로 파냈다. 군인들은 베트콩과 맨주먹으로 싸웠다. 그들은 초라했지만 세계는 거기서 '근면한 코리안'의 상(像)을 보았다.
그에 힘입어 정주영(鄭周永)이 중동건설에 뛰어들었으며, 그 부하가 '샐러리맨 신화'로 대통령이 됐고, 이병철(李秉喆)이 삼성의 초석을 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이런 희생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폭우 내리던 날 만난 채명신 전 주월 한국군사령관은 이렇게 반세기 전(前)을 회고했다. 당시 파월장병의 일당은 1달러를 약간 넘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국군의 학력은 세계 최고이지만 그때 선배들은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노병(老兵)은 증언했다. 못 배웠지만 그들은 조국을 사랑했노라고. 애국심만은 지금 후배들보다 뜨거웠노라고.
그와 헤어져 빗속을 걸으며 조국을 부인하고, 국군을 능멸하며, 기업가를 매판(買辦)으로 모는 철부지들을 떠올렸다. 교사, 교수, 정치인,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종북(從北)'하지 않곤 못 배기는, 그걸 패션처럼 여기는 배부른 머저리들이다. 그들에게 월남에서 기꺼이 '핏물김치'를 들이켠 바보 같은 선배들의 얘기를 몇번이고 들려주고 싶었다.
코멘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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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부인하고, 국군을 능멸하며, 기업가를 매판(買辦)으로 모는 철부지들은 누구일까요?
써야할 돈을 아껴 토건사업에 쏟아붇는 정치가를 비판하는 사람,
군기밀을 외국기업에 팔아넘긴 전직 장성을 비판하는 사람,
막대한 흑자를 내는 기업의 숙련기술자를 대량해고하고 고액배당받는 사업가를 비판하는 사람,
그러고도 국가의 부름이라며 소중한 젊은 시절을 군대에서 고생하며 지낸 그 사람들을
싸잡아 철부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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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08.05 16:23
힘들었던 시절, 나라를 이해 한 몸 바치신 분들의 뜻을 욕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아랫 글은 상당히 논란의 소지가 있을 법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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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글은 퍼온 겁니다 출처를 빼먹엇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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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MRE (군용 전투식량 관련)사이트에서 본 글이군요
인터넷에 자주도는 글인데
다카키 마사오 가 보잉사에서 M16 얻어왔다는 헛소리와 함께 유명한 구라중 하나로 알고있습니다.
당시 미군 전투식량 통조림이 파병장병들 입맛에 맞지않는데다
미군이(월남파병 미군의 모든 장비등은 미군이 책임지기로 했었음) 그마저도 제대로 지급을 하지않아서
자체개발하기로 한게 한국식 전투식량 K 뭐시기 씨리즈로 압니다.
히트친게 김치,볶음김치,꽁치 등인걸로 아는데
그거랑 다까키하고 크게 상관은 없는걸로 압니다.
그걸로 여대생 끼고 양주 쳐마시도 뒤진놈이 미 대통령에게 편지를???
글쎄요 ...
65년 한일국교 정상화로 일본에서 전쟁피해 보상금을 받아오지는 못할망정
독도까지 팔아먹고
빌려온 돈으로 공장차렸는데 당시 아프리카 국가들 보다 더 못살던 한국물건 살곳은 없고
마침 터져준 베트남 전쟁에 젊은 목숨 헐값에 팔아치우고
독일에 역시 젊은 목숨들 헐값에 팔아치우고
베트남 항만공사로 건설경기 붐이조성되고 이후 중동으로 이어진건 맞습니다만
위 글은 생뚱맞군요
거기다 삼성은 그 유명한 1공시절 3백산업시 사카린 밀수로 큰걸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요?
현대건설,동아건설, 등 굵직한 건설경기가 베트남과 연결되면 모를까?
그냥 대놓고 다카키 마사오 영웅화 시키는 정신나간 글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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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검색해 보니
조선일보 어제 가십란 비슷한데 올라온 글이군요...
조선일보는 좀 자제하시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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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위의 글이 다 맞다고 치고...
그렇게 월남파병가서 총알받이로 죽어나간 목숨들...
독일로 가서 지하 막장에서 빛도 못 보고 채굴하며 스러져가 영혼들...
변비환자 항문을 손가락으로 후비고, 시체 만지던 젊은 누이들...
그렇게 해서 "근면한 코리안"의 상을 외국인이 보았든 어쨌든...
그렇게 목숨값으로 번 돈을 한국으로 보내고...
그 돈으로 다시 사카린 밀수나 해대면서 커나간 이 나라의 대기업들이...
이젠 그렇게 자신들을 키워주며 죽어나간 영혼들의 자손을...
비정규직이니, 뭐니 해대면서 야금야금 파먹고 있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거대한 상아탑은...
자신들을 지금의 자리에 올려주고 타국 땅에서 눈도 못 감고 죽어버린 그들의 자손들을...
마루타 실험에, 룸싸롱 접대부까지 해가면서 모은 돈을 학비라는 이름으로 강탈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은 저렇게 멋지게 하면서...
사실은 그 포장 뒤에서 검은 속내 잘 감추고...
바득바득 돈 긁어가고 있습니다.
젠장...
흠...생각 해보니 옛날 tv에서 일본 청년들이 독도를 한국소유라는 전단지를 뿌리는 걸 본적이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