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GQ 4월에 실린 글입니다.

재미있어서 옮겨왔는데 혹시 문제가 된다면 GQ4월호를 구입하겠습니다. ㅡㅡ;;

노후를 위한 준비
올해로 딱 서른. 운전 중 라디오에서 '서른즈음에'가 흘러나오면 바로 체널을 돌린다. 서른은 희한하게도 멀어져가는 젊음인 것 같다. 특히 돈을 놓고 생각하면 더 그렇다. 자산은 인생의 바로미터로 활용하기 쉬운 도구다. 서른이면 소비보다 자산의 규모를 따질때다. 그런 의미에서, 몇 해 전 대출을 받고 용을 써서 마련해둔 27평 아파트는 든든한 '백'이다. 동시에 서른은, 욕망의 정점이기도 하다. 최근 압구정에서 만난 친구의 멋진 차를 본 순간 느꼈다. 친구의 차는 포르쉐911. 1억이 넘는 차란다.(부유한 부모를 둔 덕에 20대 초반부터 외제차를 몬다. 노후대책은 혹시 자식의 기를 살리기 위해 하는 걸까?) 내 차의 두배를 뛰어넘는 3600cc 배기량 자동차를 타고 콧바람을 흥흥거린다.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그래, 폭스바겐 골프 정도로 바꿔야겠다. 중고로 사면 3천 정도면 되니까 포르쉐에 비하면 사치도 아니다.' 생각이 현실로 이어지려던 순간, 투자 대비 기회비용을 계산기로 두들겨봤다. 10퍼센트의 복리 투자 수익률로 3천만원짜리 폭스바겐을 30년 후 노후 대비용으로 묻어두면 어떻게 될까. 복잡한 계산식을 차치하더라도 대충 5억 2만원. 골프는 머릿속에서 당분간 지워졌다.

부를 셈하는 방식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현재의 소비만족을 부의 기준으로 보자면 수천만원대 외제차는 막연한 꿈이 아니다. 1백만원대 루이비통 갈리에라 백은 주변 직장인들은 이번 달 월급일에 일시불로 결재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게 다다. '진짜' 부의 가능성에 접속하려면 현재의 소비 만족을 부의 기준으로 셈하지 말아야 한다. 수년 내에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도 낳을 생각을 하면 특히 그렇다. 물론 행복의 기준은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유명 영어강사이고 역삼동의 대형 오피스텔에서 3백만원짜리 드롱기로 에스프레소를 뽑아 마시는 친한 누나의 나이는 서른일곱. 미혼이지만 그녀의 삶은 언제나 화려하다. 세 달에 한 번 꼴로 홍콩 쇼핑에 나서는데 면세점이 이마트처럼 친숙하다.

그러나 속으면 안된다. 그녀의 연봉은 억대다. 평범한 서른 살의 욕망은 절대 억대 연봉을 받는 싱글의 삶과 속도를 맞출 수 없다. 다행히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40대가 되면 자산개편 등 다른 식의 노후대비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다행히 20,30대 직장인들은 묵묵히 시간의 흐름에 자산을 맡기면 된다. 구체적인 노후 대비 전략은 서점에 있는 책 한권만 골라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마법의 돈관리> 나 <돈걱정 없는 노후 30년>을 보면 현재의 소비만족이 복리보다 더한 속도로 빠르게 고통을 전해줄 것을 시사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는 작은 석공용 망치로 20년에 걸쳐 구멍을 파고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지질학이 압력과 시간의 학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년이라는 시간도 그렇고, 앤디가 은행원 출신이라는 묘한 오버랩도 있었지만 실제 복리의 힘도 20년이면 충분히 드러난다. 희망을 갖자.

글/최세진(기획재정부 연구원)





젊음을 위한 소비
재무 설계를 받을 때마다 일정금액을 장기 변액보험에 들어두라는 권유를 받는다. 요즘 노후 대비 안 하는 사람도 있냐며 직원이 껄껄 웃을 때는 차라리 울고 싶어진다. 결혼할 돈 만들어두라는 조언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말없이 수축하던 마음은, '노후'라는 단어 앞에서 늘 평정을 잃는다. "이렇게 젊은데, 꼭 그래야 해요? 긴 시간 차곡차곡 모으라는 말 외엔 돈을 불릴 방법이 별로 없나 보죠?"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묻고 나온다.
첫월급을 받았을 때, 부모님께 돈을 드렸다. "이런 거 주지 말고 저축이나 잘해라"시던 어머니 앞에서 말은 못 꺼냈지만, 사실 월급을 받으면서 1년간은 저축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딱 1년 간만 마음껏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한두 해 일할 것도 아닌데, 취업 1년 늦게 했다 셈 치자는 합리화도 있었다.
직장인이 되면 비싼 옷, 단정한 옷, 화려한 옷, 그저 그런 옷도 사야되고, 각종 '다이닝 레스토랑'에 '비스트로'까지 훑고, 급할 땐 택시에 뛰어들 줄 알아야 되고, 친구들 만나면 테이블 위에 척 하고 올릴 수 있는 명품 가방도 있어야 되니까. 그렇게 진짜 1년간 한 푼도 모으지 않고 소비의 즐거움을 누렸다.

월급 전날 현금 부족으로 허덕일 때마다 저축을 떠올렸지만, 내키지 않았다. 2분만 깊게 생각해보면 허물어질 이 고집은 취재차 어느 제테크 세미나에 갔다가 들은 말 때문에 생겼다. "여러분들이 지금 하는 모든 투자는 정년 후 8만 5천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이걸 생각하셔야 해요!" 청춘의 24시간이 노후의 까마득한 시간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지금 입고 싶은 등 파인 미우미우 드레스를 나이 일흔에 입으라는 건가? 빨간색 머스탱 자동차를 휜 척추로 타라는 말인가?
돈의 진짜 가치는, 돈의 크기가 아니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대상'에 있다. 그저 액수를 키우는 게 돈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아니라는 거다. 지금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가치들이 미래엔 사라진다면, 지금 '소비'하는 게 현명하다. 굳이 묵은 먼지를 털며 부르디외의 문화자본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현명한 소비가 삶의 질을 높이고 그것이 스스로의 가치이자 자본이 될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알 테다. 유일하면서도 치명적인 문제라면 투자대비 결과물의 계산이 불확실하다는 것이겠지만...

나이들어서 수입원이 없으니 지금 모아야 한다고 타박하는 소리가 뇌 속에서 들린다. 그런 논리라면, 늙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먼저 높여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철없이 어린가? 쾌락을 지나치게 좇는다고 생각하나? 단순한 쾌락에 빠진 걸로 치면 지금 뼈를 깎으며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들이 더 심할지도 모른다. 노후엔 '돈'만이 삶의 질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얼마나 대궐 같은 집에서 여생을 누리고, 얼마나 자식들을 호강시키려고 그러는가? 결국 무소유와 소비는 같은 맥락일 뿐이다.
에디터/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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