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2011.12.10 04:41
제가 예전에 쓴 글 중에 지금 쓰는 것과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만...
준용군님이 먹고싶은 걸 먹어봅니다라는 제목으로 쓰신 글에 행복에 대한 댓글이 있어서
다시 몇 자 적어봅니다.
제가 요즘 개인적으로 무한히 관심을 갖고 있는 단어가 [만약]입니다.
문법적으로는 가정법, 영어로는 IF 정도 되겠죠?
몇 년 전 읽었던 책 때문입니다.
지나 사피엔스라는 책인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구별된느 가장 큰 차이점은 언어가 아니다.
돌고래도 꽤 많은 수의 어휘를 갖고 있고 어쩌고 저쩌고...
사람만 갖고 있는 특징은 바로 가정법, 만약~ 하다면~ 이다.
가정법을 사용하는 순간 사람은 미래를 위해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고, 모든 발전이 시작되었다."
책을 읽을 때는 "아! 그럴 수도 있겠네."하고 넘어갔는데...
생뚱맞게 올 봄쯤부터 자꾸 그 생각이 머리를 맴돌더라고요.
가정법... 가령 이런 식입니다.
"만약 밤에 잘 때 추우면 어쩌지?"
방한을 생각하게 되죠. 옷이 이렇게 시작되었을 겁니다.
"만약 자다가 맹수를 만나면 어쩌지?"
집을 짓게 되고 이렇게 건축이 발달합니다.
"만약 늙어서 병들고 개고생하면 어쩌지?"
보험을 탄생시킵니다.
지금 우리는 절대적으로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투자하며 삽니다.
그건 미래에 대한 "만약~"이라는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겁니다.
물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에 가까운 행위이니 이걸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끔, 아주 가끔은 철저하게 현재만 생각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보통 여행을 다녀오면 기분전환도 되고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군가 여행이 행복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가 여행을 떠나면 그 순간부터 철저하게 현재를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 내 발이 걷는 길을 느끼고, 내 곁을 스쳐가는 바람을 느끼며, 내 눈에 담기는 주변만 본다. 그렇게 현재 내 삶을 음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매력이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한 이유도 같은 것 아닐까요?
혀를 통해 느껴지는 맛, 그건 우리를 입안에서 감도는 맛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이유는 귀를 통해 들어오는 멜로디, 가사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각을 새로 배우면서 행복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온전히 손끝에만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일 겁니다.
(뭐, 이제 겨우 한 번... 달랑 세시간 해보고 뭔 그런 소릴? 하시면 할 말 없습니다.^^)
하루 중에서 다만 한시간, 아니 삼십분만이라도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느끼는 감정에 빠져서 미래를 잊어보는 것도 행복을 위한 좋은 습관이 아닐까요?
자전거를 탈 때도 같은 느낌입니다.
바람, 도로, 눈 앞.... 흥얼거리다가
그러다 가끔 아무 생각도 없고,
새벽에 잠깨서 중고 노트북 사이트 뒤적거리다
이런저런 잡념에 시달리다가
머리가 개운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