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아들과의 한판승부
2011.05.18 10:01
아들과의 기싸움의 전형적인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어제 밤에 일어난 일 입니다.
- 집에서 저녁식사 중. 반찬은 어른들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럭저럭 괜춘한 메뉴로 구성됨(된장찌게, 고등어, 잡곡(오곡)현미밥, 김치, 멸치...).
- 밥 먹자는데 아들은 계속 딴청. 거실에 있는 칠판에 그림 그리고 있음.
- 엄마가 몇차례 소리를 지르니 억지로 식탁에 앉음. 먹는 폼을 보니 영 맛 없어 하는 눈치임.
** 참고로 밥 문제로 부모 속 많이 썩임. 아무래도 자극적인 과자류를 접하다 보니 발생한 사태인 듯 함. 그 맛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성향을 꺾는 것은 부모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임.
- 어쨌든 두세숟가락 억지로 구겨 넣고 딴청 피우며 먹음. 먹으면서 '아빠, 밥 다 먹고 나랑 놀이터 가서 놀자' 라고 함. 그래서 나는 '그래, 밥 다 먹으면 그때 나가서 놀자. 그런데 밥 다 안먹으면 안 놀꺼야'라고 함. 그랬더니 아들 동의. 일단 밥을 다 먹게 하는 동기를 제공하였고, 만약 약속을 어기다면 그것은 아들의 책임이니 약속의 개념을 가르치기엔 더 없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함.
- 그런데 느닷없이 바나나가 먹고싶다고 함.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는데 지속적으로 바나나가 먹고싶다고 조름(참고로 식탁 위에 바나나가 있었음)
- 그래서 다시 협상을 시도. '바나나 다 먹고 밥도 다 먹으면 아빠가 놀이터 가서 놀아줄께....바나나만 먹고 밥은 안먹었는데 놀이터 가자고 하면 그 땐 같이 안 놀꺼야'라고 했더니, 아들 흔쾌히는 아니지만 일단 동의.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찍음.
** 사실 바나나 먹고 밥도 다 안 먹을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 그럼에도 이런 약속을 한 이유는 약속의 개념을 이번 기회에 학습시키고자 하는 의도 때문임.
- 역시나 바나나 다 먹고 밥 먹는걸 힘겨워 함. 겨우겨우 서너숟가락 구겨 넣더니 마지막 한 숟가락에서 포기.
- 아빠한테 오더니 밥 다 먹었다고 거짓말 함. 그래서 아빠가 확인해야겠다며 식판 가져오라고 했더니 그럴 수 없다고 함.
- 엄마보고 식판 가져오라고 했더니 역시 한 숟가락 남아 있음. 그럼에도 아이는 놀이터 가겠다고 함.
- 내가 '분명히 아빠랑 약속 했는데 약속을 어겼네...새끼손라락도 걸었는데 말이지. 약속도 어기고 거짓말도 하고..아빤 실망이야' 라고 함.
- 내 말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그냥 놀이터 가겠다고 떼만 씀. '놀이터 가자'라는 말을 한 50번 정도 함. 급기야는 울음을 터뜨림 ㅡㅡ;;;;
- 나는 절대 갈 수 없다고, 그 이유는 네가 약속을 어기면 앞으로 너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어 아빠가 실망 할 것 같다고 말 함. 내가 말 할때는 귀담아 듣는 것 같다가도, 결국 하는 말은 '놀이터 가자' 임.
- 그렇게 한 10분 정도 떼를 씀. 이쯤 되면 거의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
- 아내는 그냥 놀이터 갔다오라고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발생 했을 때 같은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큼. 절대로 안됨.
- 울고불며 떼 쓰는 아이에게 결국 무너지고 맘. 그러나 놀이터를 갈 수는 없고, 대신 제3의 장소를 택함. 왜냐하면 내가 약속을 어기는 꼴이 될 수는 없으므로. 따라서 '아빠도 놀이터를 가고 싶지만, 네가 약속을 어겼으니 놀이터는 갈 수 없음. 그러니 놀이터 가는 대신 옥상에 가겠음'이라고 했더니 아들, 입이 쫙 찢어지면서 좋다고 함 ㅡㅡ;;;;
- 옥상에서 비눗방울놀이 좀 하고, 달리기 시합 두번 하고(내가 져 줌) 내려옴.
어떻습니까?
저는 여기서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네요.
- 첫째, 인스턴트 음식의 폐해
- 둘째, 아이와의 협상시 부모의 역할
인스턴트 음식은 제가 통제할 범위를 넘어섰다는 느낌이 들 정도 입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이 먹어 아이가 비만이 된 상태는 아니지만, 적어도 식사시간에 문제가 되고 있으니 고민이네요. 부모의 지도나 아빠의 권위(혹은 윽박지름)를 무력하게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협상(혹은 대화)시 부모의 역할이라는게 참 어렵습니다. 아이의 자존심을 지키며 부모의 역할을 사수 한다는게 보통 어려운게 아니에요. 특히 고집불통식으로 울고불며 떼 쓸땐 정말 뚜껑이 열릴 것 같아요. 위의 사례에서 100점짜리는 '바나나먹고 밥 먹은 후 놀이터 가기' 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100점은 달성되지 않습니다. 90점 짜리는 '바나나 먹고, 밥 안먹고, 놀이터 안 가기'에서 마무리 되는 것인데, 문제는 놀이터를 가겠다고 주장하는겁니다. 결국 저는 한 50점짜리 답을 택했네요. 바나나 먹고, 밥 안먹고, 놀이터 대신 다른데 가기. ㅡㅡ;;
어떻습니까? 조언좀 부탁 드려요.
코멘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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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이야
05.18 11:47
떼를 쓰면 끝내 엄마 아빠가 진다는것을 알게 되는 순간.. 아이들은 떼쟁이가 되고 맙니다.
처음엔 좀 힘들어도 안되는건 안된다는것을 명확히 일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의 경우 식탁위, 또 식탁에서 보이는 곳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두지 않으시는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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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전에 60분 부모에 나온 이야기였는데요.
아이가 샐러드를 너무 좋아해서 밥 먹을때마다 샐러드를 먼저 먹겠다는 아이와 밥부터 먹으려는 엄마 사이에 싸움이 잦았어요.
전문가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뭐하러 샐러드를 식탁에 둡니까? 치우세요. 밥 먹고 나서 꺼내주면 됩니다.'
약간은 다르지만.. 애시당초 싸울 거리가 되는 건 주변에서 치우라는 것도 방법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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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raesthetic
05.18 13:13
첫째가 만 7살로 이제 1학년을 거의 마쳤습니다. 여러가지로 부딧쳤지만 규칙을 잘 설명하고 규칙을 어길 경우 그 피해가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것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자율적으로 합니다.
예 1. 식사: 밥량, 반찬 량 다 자신이 정합니다. 자신이 정했으니까 그 양을 처리하는것도 자신의 몫입니다. 식사를 못끝내면 주말에 전자오락 금지, 하루씩 길어지고 주말 전자오락이 금지되면 다음주말까지 연장됩니다. 아침에 아침 안먹고 학교가곤 하고 소리지르고 아침부터 난리였는데 지금은 안 그럽니다. 내가 늦는 것도 아니고, 아침 다 먹을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학교 늦으면 지각, 결석처리하고 그럴때마다 페날티 적용, 좋아하는 놀이 금지, 오락 금지, 집안일 돕기, 등등. 그거 안하면 계속 페날티 적용.
애들 가정교육은 규칙의 이해, 공평하고 일관적이면서 단순한 규칙의 적용(특히 엄마와 아빠사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것이 중요), 벌칙의 이해, 감정적이지 않는 벌칙 적용으로 이루어 지는거 같습니다. 엄마아빠의 화낸 모습을 보고 화나면 저렇게 행동하는 구나 하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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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아해가 달라졌더래요 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저도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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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협상은 양쪽이 다 말을 알아들을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린 아이들은 가치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이가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 것과 밥상에서 떼를 쓰는 것은
부모가 서로 동의하여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말 전쟁입니다..
이건 뭔가를 먹느냐 안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의 권위에 순종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아이하고 싸우지 마십시오. 그럼 아이는 아빠하고 자기가 동등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식은 절대 동등한 입장이 아닙니다.
"하지 마라!"고 말하면 절대로 스스로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울어도 난리를 쳐도 눈하나 깜빡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감정적으로 다가서지 마시고 아주 차분하고 일관성있게 훈육을 하십시오.(군대 다녀오셨으면 '조교'를 생각해보십시오..^^)
가정에서 아버지가 가장 권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가르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9시 취침'이라는 규칙을 세웠으면 9시가 되면 무조건 재워야 합니다.
부모가 일관성없이 행동하면 권위는 바로 상실입니다..
산너머 산입니다. 공부문제, 게임, 친구관계, 속이는 일, 귀가 시간 등등..
그런 점에서 저는 초등학교 이전에는 자녀들을 체벌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아주 세게 한 대만 때리면 나중에 매 들일이 없습니다..
지금 1대로 고칠 수 있는 일을 미루시면 나중에 10대 100대로도 안됩니다.
철든 다음에는 절대로 때리지 마시고요.. 거의 소용 없습니다.
너무 무겁게 말씀드린것 같습니다..
두 놈의 사내놈(이젠 중고등학생)을 키운 아버지의 경험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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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오는 육아교육서는 과거와 많은 부분에서 다른데요. 일단
1. 애하고 싸우지 말라. 아이가 지위를 동등하게 본답니다.
실제로 부모와 아이는 인간으로는 동등할지 모르지만, 역할에서는 절대로 동등하지 않지요.
부모는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서포트해주고 가이드 해주면서 할 수 있는 것과 가능한 것 등을 컨트롤할 필요가 있는데
아이가 부모와 자기의 지위를 부모와 같은 선상에 올려놓기 시작하면
부모가 당연히 파워가 더 세니 겉으로는 컨트롤이 되는 것 처럼 보여도 그건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강요되는 것이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고 인성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답니다.
2. 유아기 시절의 아이한테 약속과 도덕을 너무 강요하지 말아라.
크면서 분명히 약속과 책임, 도덕적 책무에 대한 기준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실제로 어느정도 유도리 있게 생기는데
어릴 때 이걸 빠듯하게 지키기를 요구하면 그런 자연스러운 약속과 책임의 관계가 너무 명확해지고,
사람이란 완벽할 수 없기때문에 크면서 상황에 따라서 약속을 못지키게 되거나
도덕적 책무를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나올 때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게되서 문제를 보일 수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성인까지 지속될 수 있고요.
더 큰 문제는 너무 어릴 적에, 한마디로 말이 안통하는 시기(대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에 자주 상황을 접하게 되면
유청소년시절을 보내면서 부모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도덕적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목도하게 되면
부모에 대한 커다란 실망감과 또다른 스트레스로 다가 올 수 있답니다.
특히 2번이 요즘 교육학자들이 육아서적에서 많이 얘기하더군요.
저도 2번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약속을 정말 꼭 지켜야 하는 상황(병원과 같이)에서도
애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강제하지 못하고, 대화로 어떻게 해서든지 살살 달래서 병원에 대려가려면
시간이 4~5배가 들기도 하거든요. ㅡ.ㅡ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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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내용은 많이 본 거 같은데.. 2번은 잘 못본 거 같아요.
좋은 책이나 글 같은 거 추천해주실 거 혹시 없나요? ^^;
다음달에 돌인데도 저것보다 수준은 낮지만 매번 갈등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
(북채로 유리창 두드릴때 못 하게 하기.. 머리감을 때 샴푸캡 못 벗게 하기 수준?)
쉽지 않네요 정말. -_-a
책이야 엄청 많지만... 그거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허허